얼마 전 삼성과 애플은 휘어지는 스마트폰과 손목시계형 스마트 기기를 공개해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SF영화에서나 보던 것처럼 스마트폰을 접거나 둘둘 마는 모습을 보였던 것이다. 구글도 뒤질세라 안경형 모바일 기기인 ‘구글 안경’을 내놓으며 경쟁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런 아이디어가 성공하려면 배터리의 혁신이 동반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화면을 휘게 할 순 있지만 배터리까지 휘게 하려면 갈 길이 멀다는 것이다. 실제로 휘어지는 스마트폰은 한쪽에 딱딱한 배터리를 부착한 채 공개됐다. 손목시계형이나 안경형 기기도 크기가 작은 만큼 배터리 용량이 부족하다는 태생적 한계를 지니고 있다. 유연한 배터리를 개발해 시곗줄이나 안경테 전체에 적용하는 방법이 해결책이 될 수 있다.

다행히 국내외 연구자들이 유연한 배터리와 관련한 연구결과를 속속 내놓고 있어 미래형 스마트 기기를 실생활에서 사용할 날이 멀지 않을 전망이다.

●휘는 것은 기본, 이젠 늘어난다


한양대 백운규 에너지공학과 교수팀은 미국 일리노이대 존 로저스 교수팀과 공동으로 휘어지는 수준을 넘어 늘어나기까지 하는 배터리를 개발해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 2월 26일자에 발표했다.

이 배터리는 사방에서 잡아당기면 원래 크기의 최대 4배까지 늘어나고 손을 놓으면 원 상태로 돌아간다. 전력과 전압도 기존 리튬이온 배터리와 비슷해 늘어난 상태에서 LED 전구를 9시간 가까이 밝힐 수 있었다. 연구자의 팔꿈치에 늘여 붙인 실험에서도 정상적으로 작동해 굴곡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네모난 모양에 말랑말랑한 이 배터리는 가로세로 약 4cm 크기의 주머니 안에, 지름 2mm짜리 전극 100개를 ‘스프링’으로 연결해 만들었다. 스프링은 커다란 S자 모양으로 생겼는데 그 안에는 더 작은 S자 모양의 스프링이 함께 들어있어서, 잡아당기면 커다란 S자가 먼저 펼쳐지고 다음으로 작은 S자 스프링이 펼쳐진다.

이 배터리를 무선으로 충전하는 실험에도 성공해 상용화한다면 다양한 분야에서의 활용이 기대된다. 다만 충전과 방전을 20번 넘게 반복하면 기능이 떨어지는 문제가 있어 현재 추가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백 교수는 “앞으로 LED뿐만 아니라 다양한 유연한 전자소자를 신축성 있는 배터리와 결합해 마음대로 휘고 접고 늘일 수 있는 전자기기를 한번에 만드는 기술을 선보일 예정”이라고 밝혔다.

●몸 속에서도 안전한 배터리, 프린트한다

배터리를 유연하게 만드는 기술은 스마트 기기뿐 아니라 의료 분야에도 활용 가치가 높다. 환자의 몸 안에 넣어서 뇌파나 심장 박동을 꾸준히 확인하는 장비에 전원으로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이때 중요한 점은 배터리에 들어가는 모든 물질이 사람에게 해롭지 않아야 한다는 것.

안타깝게도 앞서 소개한 배터리에는 인체에 해로운 액체 물질이 들어간다. 양극과 음극 사이에 전류가 흐르게 하는 전해질 물질인 ‘카보네이트’가 문제가 된다. 양극과 음극을 분리하는 막도 열에 약해 자칫 두 전극이 만난다면 폭발할 수 있어 의료용으로 쓰긴 힘들다.

울산과기대(UNIST) 이상영 친환경에너지공학부 교수와 공주대 조국영 신소재공학부 교수는 고체 상태의 안정한 고분자 물질을 전해질로 활용해 이 문제를 해결했다. 연구팀은 고분자 물질을 물엿처럼 흐르게 만든 뒤, 빵에 물엿을 바르듯이 전극 위에 인쇄하고 자외선을 30초 정도 쬐는 방식으로 휘는 배터리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양극과 음극, 전해질 등 배터리의 모든 부품을 순서대로 인쇄하기만 하면 돼 연속적으로 생산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지금까지 액체 전해질로 배터리를 만들려면 복잡한 단계를 거치며 12시간 넘게 걸려야 했다. 이 연구결과는 재료분야의 권위지 ‘어드밴스드 머티리얼스’ 3월 13일자 표지논문으로 실렸다.

●휘는 배터리 1만 번 반복해도 여전~

유연하고 안전할 뿐만 아니라 충·방전을 많이 할 수 있는 배터리도 개발됐다. 지난해 KAIST 이건재 신소재공학과 교수팀은 잘 휘면서도 충·방전을 1만 번 반복할 수 있는 배터리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성능 좋은 배터리를 만들려면 양극재료를 고온에서 열처리를 해야 하는데, 기존의 플라스틱 기판으로는 불가능했다. 연구팀은 딱딱한 광물인 운모로 만든 기판 위에 양극재료를 올려놓고 700도로 열처리한 뒤 운모 기판을 떼어내는 방식을 고안했다. 남은 부분을 플라스틱으로 다시 감쌌더니 머리카락 10분의 1 두께의 얇고도 유연한 배터리를 만들 수 있었다.

이렇게 개발한 배터리는 휘기 전과 후의 전압이 변하지 않은 것은 물론 충전과 방전을 1만 번 반복해도 안정적으로 작동했다. 배터리 내부에는 열에 강한 고체 전해질을 써서 폭발할 위험도 없다.

연구팀은 이 배터리를 휘어지는 디스플레이에 부착해 휴대가 가능한 유연한 전자장치를 만드는 데도 성공했다. 이 교수는 “이번 연구로 휘어지는 전자제품 개발을 가로막는 큰 장애물을 넘었다”며 “앞으로 배터리의 충전용량만 더 늘리면 상용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재웅 기자 ilju2@donga.com